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자리한 나라로, 전쟁의 상처와 복원이 공존하는 특별한 여행지입니다. 수도 사라예보와 남부의 모스타르는 과거의 흔적을 간직하면서도 새로운 평화를 일구어 가는 도시들입니다. 여행자는 이 두 도시와 전쟁기념지를 따라가며, 단순한 관광을 넘어 인간의 회복력과 공존의 의미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역사, 문화, 그리고 평화의 여정을 중심으로 보스니아의 세 가지 주요 루트를 소개합니다.
사라예보의 역사와 도시의 흔적
사라예보는 수백 년 동안 다양한 문화가 교차한 ‘유럽의 예루살렘’으로 불립니다. 한 도시 안에 모스크, 교회, 유대교 회당이 나란히 서 있으며, 이슬람과 기독교, 유대교가 공존해온 역사를 직접 마주할 수 있습니다. 거리 곳곳에는 오스만 제국의 흔적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양식이 함께 남아 있어, 걸을수록 시대가 겹쳐지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바슈차르시아(구시가지)는 사라예보의 심장부로, 커피 향과 구리 세공의 망치 소리가 어우러져 전통과 일상이 살아 숨 쉬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마시는 조지아식 커피 한 잔은 수백 년의 이야기를 품은 문화 체험이 됩니다. 라틴 다리(Latin Bridge)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이 된 ‘사라예보 사건’의 현장으로, 전쟁의 역사가 한순간에 바뀐 장소입니다. 지금은 평화의 다리로 복원되어, 관광객과 시민이 함께 걸으며 과거를 되새기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도시를 따라 이어진 ‘스나이퍼 거리’는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지역이었지만, 현재는 새 건물과 예술 벽화가 어우러진 활기찬 거리로 재탄생했습니다. 건물 외벽의 탄흔 사이로 피어난 그래피티 예술은 상처 위의 예술, 절망 위의 희망을 상징합니다. 사라예보의 밤은 낮보다 더 감성적입니다. 언덕 위의 전망대에서 도시 불빛을 내려다보면, 전쟁의 잿더미에서 다시 일어난 도시의 강인함이 느껴집니다. 여행자는 이곳에서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는 현재의 역사’를 마주하게 됩니다.
모스타르의 복원과 문화유산
모스타르는 보스니아 남부의 대표 도시이자, 전쟁과 복원의 상징입니다. 도시의 이름은 ‘다리를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곧 화해와 연결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스타리 모스트(옛 다리)는 16세기 오스만 제국 시절에 건설되어 수 세기 동안 사람과 문화를 이어왔습니다. 하지만 1993년 내전 중 폭파되었고, 이후 국제 사회의 도움으로 2004년에 원형 그대로 복원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다리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다시 연결된 마음의 다리’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다리 위에서는 현지 청년들이 전통적으로 행하는 다이빙 퍼포먼스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강 아래로 몸을 던지며 평화를 상징하는 용기를 보여주고, 여행자들은 그 모습을 보며 이 도시가 품은 삶의 열정을 느낍니다. 모스타르 구시가지는 자갈길 골목과 전통 찻집, 공예품 가게로 가득합니다. 오스만 양식의 석조 건물과 유럽풍 카페가 공존하는 이곳은 문화의 경계가 얼마나 유연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모스타르에는 작은 박물관과 전쟁기념관이 곳곳에 자리해 있습니다. 파괴된 건물 일부는 일부러 복구하지 않고 남겨두어 전쟁의 교훈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행자는 이곳에서 ‘복원된 도시’와 ‘기억을 품은 도시’를 동시에 마주하게 되며,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상처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끌어안는 데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해 질 무렵 스타리 모스트 위에서 바라보는 네레트바 강의 풍경은 보스니아 여행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잔잔한 강물 위에 비치는 석양빛과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과거의 아픔을 이겨낸 현재의 평화를 상징합니다.
보스니아 전쟁기념지와 평화여행 루트
보스니아의 평화 여행은 ‘기억과 치유의 길’을 따라 걷는 여정입니다. 수도 사라예보 외곽의 전쟁터널 박물관(Tunnel of Hope)은 시민들이 생존을 위해 직접 판 800미터 길이의 지하 통로로, 당시의 절박한 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여행자는 좁은 터널 안을 걸으며 전쟁의 공포와 함께 희망을 지켜낸 인간의 강인함을 느낍니다. 사라예보 중심부의 갤러리 11/07/95는 스레브레니차 학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전시관으로, 사진과 영상, 생존자 인터뷰를 통해 전쟁의 진실을 조용히 전합니다. 전시관 내부는 어둡고 조용하지만, 그 공간이 전달하는 울림은 강렬합니다. 모스타르에서도 전쟁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도시 외곽에는 복구되지 않은 건물들이 남아 있고, 그 벽면에는 ‘Never Forget’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메시지는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평화의 다짐입니다. 이 루트는 단순한 역사 관광이 아니라 ‘사람의 회복력’을 배우는 여정입니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꽃을 심고, 무너진 다리를 다시 세운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행자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보스니아 정부와 시민 단체들은 매년 평화 걷기 행사와 기념식을 열어 전쟁의 상처를 기록하고, 젊은 세대에게 평화의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여행자는 이 행사를 통해 ‘과거의 비극을 잊지 않는 법’과 ‘다시 일어서는 힘’을 동시에 배우게 됩니다. 보스니아의 평화 루트는 단순히 무거운 역사를 전하는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선함과 연대, 그리고 희망을 되새기는 길입니다. 이곳을 걸을 때마다 여행자는 역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결론
보스니아의 여행은 화려하지 않지만, 깊고 진실합니다. 사라예보의 골목에서, 모스타르의 다리 위에서, 그리고 전쟁기념관의 조용한 공간에서 우리는 과거를 배우고 현재의 평화를 느낍니다. 이 나라는 상처를 지웠던 곳이 아니라,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운 나라입니다. 그 진솔함이 보스니아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역사를 따라 걷는 여행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여정’입니다. 여행자는 이곳에서 과거의 어둠보다 더 밝은 인간의 빛을 보게 되고, 그것이 바로 보스니아가 전하는 진짜 메시지입니다. 보스니아를 찾는 순간,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하나의 배움이 됩니다. 평화와 용서, 그리고 공존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며, 이 작지만 강한 나라의 이야기를 마음에 담아가시길 바랍니다.